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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ノルウェイの森); 무라카미 하루키 저

BH.Feel- 2012. 4. 29. 13:04



오랜 시간동안 읽던 책을 드디어 읽었다..

와타나베의 성장소설인가? 이 책에 대한 어떤 조사도 하지 않고 읽었고, 이전에 하루키의 소설도 읽지 않았다.
유명세가 대단하여 그 소문만 듣고, 기대감을 가졌을 뿐이었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과 같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는 점에서, 나의 감각의 정서와 찌릿한 공유를 시작했다.
시작은 심상치 않게 비행기에서 시작한다. 그 묘사란 대단한 것이어서, 정말 책의 뒷 부분이 궁금해졌다.
도입부에서 여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나오코와의 대화를 회상한다. 개짖는 소리 등이 묘사되고, 
내가 옛날을 추억할 때 은은히 짐작할 수 있는 그런 소리들을 글로 표현해내어 자고있던 추억을 조금씩 흔들었다.

책을 읽는 것은 나의 경험과 비교하여, 나의 가치관을 빗대어 보는게 아닐까. 그리고 숨겨져있던 내 모습을 새로운 간접 경험과 시각을 통해 일깨우는게 아닐까 생각할 수 있게 한 소설이다.

굉장히 두꺼워서 읽는데도 오래걸렸고, 가벼운 내용이 아니기때문에 쉽고 빠르게 읽을 수는 없었다.


노르웨이숲이라는 원제 대신 상실의 시대라는 그럴듯하고 있어보임직한 제목으로 한국에 발매된 것이 못내 걸린다.

무슨 의도에서 였을까..? 


절친한 기즈키는 17살에 주인공 와타나베와 기즈키의 애인 나오코를 두고 떠난다. 이것이 첫번째 상실..
기숙사에 함께 살던 보수적이고 꽉 막힌 룸메이트 돌격대가 사라졌다. 두번째 상실..그리고 우수한 선배인 나가사와와 함께 만나서 하룻밤을 함께 잔 수많은 여자들과의 잠자리로부터 오는 허무감.. 선배 나가사와의 취업.. 
미도리의 아버지의 죽음.. 미도리로부터의 헤어짐..  마지막으로 나오코의 죽음.. 

책을 다 읽고나니까.. 어째서 상실의 시대인지 제목이 말해주고 있다. 

노르웨이 숲이라는 비틀즈 노래의 가사와 제목으로 이 책의 주제라고 볼 수 있는 제목이 이 작품을 살려주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냥 독자로써 원작을 깼다는 것에 뭔가 상실된 느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자신을 몇 번이고 되새겨서 돌아볼 수 있었다.
내 자신의 마음 구석구석, 내 삶의 지표가 되었던 가치관들, 내가 겪어보지 못했지만 어디가 간지러운지 긁지 못했던 일부분을 이 소설이 긁어 주었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다소 성관계가 자주 나오게 되는데, 성관계를 일종에 사랑과, 그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수단으로 표현했다.
성관계는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단이지만, 외로움이라는 상실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음이나 정신에서 오는 무언가를 충족하지 않는다면 그 상실감이 곱절로 커질 뿐이라는 해석을 해본다.

1970년대의 일본이 시대 배경이다. 그리고 1987년 6월 유럽 로마에서 이 글을 다 썼다고 하는 하루키의 상상력이 대단할 뿐이다. 이 소설은 눈 앞에 보이듯이 선명한 거리와 건물 등 실제로 보일만큼 묘사를 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인간들이 등장한다. 돌격대, 엘리트 같은 나가사와.. 야한 이야기를 좋아하고 야하지만 결국에는 따뜻함을 느끼고 싶은 미도리.. 환청이 들리며 정신병으로 슬퍼하는 나오코.. 레즈비언 소녀로부터 엄청난 성적 희롱을 당하고 난 뒤 정신병 증세가 도져버린 레이코 여사.. 마지막에 레이코 여사와 잠자리를 한다는 것은 정말 충격적이다.


그녀가 외로웠던 것은 분명할테고, 아마도 나오코의 상실감을, 그녀의 죽음을 알고 슬퍼하는 것에 대한 감정의 상실감을 그런 식으로 채우고자 했던 와타나베의 감정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고 본다. 
이전에 기타 연주곡 49곡 +1노르웨이숲 곡+1 바흐의 곡까지.. 장례식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정신없이 이것 저것 떠들어대는 와타나베의 전체적인 이야기에는 어떤 한가지로부터의 방황이 담겨져있다. 친한 친구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의 죄책감, 나오코로부터의 완벽한 사랑을 얻지 못한채 떠나보내야했던 상실감이 고조된다.. 그는 나가사와를 사랑하는 하츠미를 위로하기도 한다. 나가사와를 증오하는 이유이다.


나오코의 떠남과 그 상실감으로 한달간 폐인이 됬을때, 나의 모습을 대입시켜보았다.


죽음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고, 26살의 지금 내 인생은 불완전하고 상실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상실하는 것이 두려워서 얻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 것인가..?


난 이 소설에서 부분부분 사소한 것들에서 작가가하는 말 모두를 읽을 수 없어서 아쉽다.
가령 나오코와 레이코여사가 있던 깊은 산 속의 요양원에서 만났던 도쿄에 대해 떠들던 수위아저씨를 떠올려본다.
작가는 그 수위아저씨를 말하므로써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 책은 자칫 잘못하면, 성에 환장한 인간의 방황.. 또는 의리와는 거리가 먼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사랑이라던가, 마음을 진실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죽은 친구의 여자를 사랑하고, 그 여자의 친구와 자고.. 


이 책에 대한 어떤 리뷰도 읽지 않고, 내 생각, 느낀점을 표현하고 싶었다.

난 순정을 추구한다.

이제 내가 읽었던 것을 구체화시키고 정리시키기위해, 리뷰를 마치고 나서 다른 사람의 리뷰와, 2010년도에 나온 영화를 보려고한다. 내가 상상했던 것과 얼마나 가까울까.. ?


영어때문에 바쁘고, 취업때문에 걱정하고, 회사때문에 피곤한 나에게 새로운 생각과 방향을 보여주는 그런 소설이었다.
두려운 것들과 기피하고 싶었던 것들을 좀더 잘 보여주었던 소설이었다. 새로운 시각을 주었다.


이 책은 나의 고독함을 위로하게 해주었고, 일반적인 것으로 만들어주었다. 
나의 외로움과 고독함과 공포 비슷한 것들을 이 소설은 연하게 해주었고, 그만큼 날 위로해주었던 것이다.


책 구절 중..
확실히 그것은 진리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동시에 죽음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만 할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나오코의 죽음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어떠한 진리도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떠한 진리도 어떠한 성실함도 어떠한 강함도 어떠한 부드러움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 슬픔을 실컷 슬퍼한 끝에 거기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길밖에 없으며, 그리고 그렇게 배운 무엇도 다음에 닥쳐오는 예기치 않은 슬픔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