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와 발해의 대치를 일컫는 시대
통일신라 이전에 상대라고 할 수 있고, 통일신라가되고 중대라고 볼 수 있다.
상대/중대/하대로 나뉜다.
상대(성골) - 박혁거세~ 선덕여왕 - 진덕여왕
중대 (진골, 무열계직계) - 무열왕-문무왕-신문왕-효소왕-성덕왕-효성왕-
경덕왕(중시에서 시중으로 명칭 바뀜) -혜공왕(김지정의 난때 피살) - 내물왕계 김양상이 선덕왕에 즉위
하대 (진골, 내물계방계) - 선덕왕 - 김주원(출근늦어 왕 못됨) - 원성왕 - 진성여왕 -
경애왕(견훤에게 죽음) - 경순왕(마지막왕)
신라 중대의 시작
-. 진덕여왕 사후 김유신계의 지원을 받은 김춘추가 진골출신으로 왕위 오르면서 성골의 왕위 계승 종식
-. 무열왕은 통일 전쟁을 이끄는 과정에서 왕권을 더욱 강화, 혜공왕에 이르기 까지, 무열왕 직계 자손의 왕위 세습 이루어짐.
-. 전제 왕권 강화 (시중 중심)
신문왕 (재위 681~692) 약 11년동안
1) 귀족 세력 숙청: 김흥돌의 모역사건을 계기로 진골 귀족 숙청
-. 국왕과 혈연관계, 통일전쟁 공있는 공신들 중심으로 개편 단행
-. 박씨와 가야 및 고구려계 귀족들은 정권에서 소외됨
2) 정치제도 정비: 집사부 장관: 시중(중시)의 권한 강화
-. 예작부(건축, 수리 등을 담당)
-. 통일 전부터 갖추던 중앙 14부 체제 완비, 더불어 9주 5소경 지방행정 체제 정립 완료
귀족세력 대표자격: 상대등 vs 집사부 장관 중시(시중) 왕의 직속기구
3) 국학(논어, 효경 필수 가르침) 설치: 유학 교육을 위해 국학 설립- 강화된 왕권 보좌, 유교교육 필요성 커진 상황 반영
4) 금마저의 반란 진압: 신문왕 3년 차 금마저에서 고구려왕으로 봉해졌던 보덕왕 안승을 경주로 이주시켜 관등과 김씨 성 및 토지를 하사, 기존에 금마저에 있던 장군 대문이 반란을 일으켜서 진압하고. 거기 살던 유민들을 남쪽으로 이주 시킴.
5) 달구벌(대구) 천도 시도: 기존 귀족 세력 약화시키려고 했으나 실패 (689년)
6) 6두품 성장: 왕권이 강화되면서 이와 결탁한 6두품이 유교적 시격ㄴ을 바탕으로 국왕의 정치적 조언자 역할을 하면서 역할을 넓혀감.
7) 감은사 설립: 아버지 문무왕을 기리기 위한 감은사 설립: 감은사지 부근의 동해 바다에는 문무왕의 해중릉인 대왕암이 있음.
5소경:
충주(통일전)- 국원소경(중원경)
원주(문무왕)- 북원소경
김해(문무왕) - 금관소경
청주(신문왕) - 서원소경
남원(신문왕) - 남원소경
상수리제도: 지방세력을 효과적 감시하기위해 그 자제를 볼모로 왕경인 경주에 와있게 한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