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容疑者 Xの 獻身(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저/양억관 역 | 현대문학; 2006년 08월 10일

[책] 容疑者 Xの 獻身(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저/양억관 역 | 현대문학; 2006년 08월 10일



명성이 자자한 터라, 전부터 꼭 읽고 싶었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는 히로스에 료코라는 10년 전 일본을 대표하는 미녀 배우가 출연한 '비밀'이라는 영화의 원작인 소설을 쓴 사람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오사카부립대학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즉, 이공계를 전공했다.


그래서 더더욱 이 용의자 X의 헌신에 몰입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의 헌신을 그린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충격에 빠졌다.

<볼 수 없는 사람의 내면의 차이를 아름답게 그리다>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를 처음 만난 것은 용의자 X의 헌신이 아니라, 붉은 손가락과 신참자에서 였다.
카가 형사가 주인공이었는데, 그는 용의자의 눈을 깊히 드려다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모습에서 그가 용의자 및 사건을 관찰하는 태도나 안목에서 배울게 많았고 감동할 수 있었다.
그게 전부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가 그려낸 것이었다. 그래서 너무 좋은 감정과 생각하는 사고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또한 문장력도 좋았고, 공대생이라는 공감대가 더더욱 대단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의자 X의 헌신은 갈릴레오 시리즈이고, 내가 앞서 읽은 두 권은 카가 형사 시리즈 중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용의자 X라는 류승범 주연의 한국화된 영화가 나온다기에, 얼른 책을 사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신참자에서 나는 큰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 소설에서는 내가 지난번 카가형사가 등장한 신참자에서 느낀 바처럼 사람의 내면에대해 철저하게 그리고 있다.

사람마다 읽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뭐라고, 강요할 수 없다.
적어도 내가 보는 관점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인 용의자 X의 헌신에서 느낀 감동은 '사람의 내면'의 차이 또는
'사람 마다 다른 내면의 차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감대'였다.

이를 너무 잘 표현한다.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의 절대고독>

요즈음 하반기 취업 준비를 위해 토익공부를 힘쓰고 있다. 그래서 틈틈히 이 소설을 읽은 결과 무려 2달이 걸렸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 상에서는 일주일 정도의 이야기가 있음에도, 한 달 내내 수사를 한 것처럼 느껴진다.
어쨌든 내가 토익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은 고독함이었다. 매 번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가, 단절되니..

내 인생이야 다른 친구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 되버렸다. 그렇다보니 더더욱 가족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나에게 힘써주시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같이 성장해 온 동생. 

나야 가족이 있다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인 이시가미는 가족도 없다.
그저 수학에 대한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고등학교 수학 교사이다.
그의 천재성을 고등학교에서 썩히는 것조차도 히가시노 게이고는 부드럽게 그리고 당연하고도 합리적으로 알 수 있게 표현한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과 일본도 비슷하며,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 어디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느 날 그에게 고독으로부터 자괴감이 찾아 온 듯하다. 누구에게나 고독은 똑같은 의미이다.
살아갈 이유가 없음을 시사한다. 고독이라는 것은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27살의 내가 느낀 고독은 그렇다. 

어제 읽은 아고라의 40대 중년의 글쓴이의 글에서도,
어렸을 적 고교 동창이 20년전 고교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글쓴이가 멋있었고 재밌었다고 칭찬을 하니,
그런 칭찬이 너무 반갑고 감격스러워서 행복했다고한다.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40대 중반의 버거운 인생의 무게를 한결 가볍게 하는 것이 고교 동창의 칭찬이었고, 그 칭찬에서 자기 자신의 존재를 느낀 것이다.

아고라를 읽게 된 것도 사람의 생각의 다양성을 보기 위해서였고, 연령대별로 생각을 파악하고 싶었다.
그래서 트위터도 하고, 진보 및 보수의 트위터를 구독하고 있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것이고, 여행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알아가면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친구들은 그런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있어서 약간 슬프고, 외롭기도 하다.

잠시 주제에서 벗어났는데, 이런 고독의 외로움 속에서 자기 자신의 존재에 행복을 못 느꼈는데,
옆집에 새로 이사 온 모녀가 화사하게 웃으며, 그에게 첫 인사를 하러온다. 
수학을 탐구하는 기쁨과도 같은 사랑의 감격을 느낀다.


<천재수학자의 마음을 빼았은 야스코의 피치못할 남편 살해동기>

사람마다 사연이 있는 법이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은 공감하지 못하는 일,
노가다판의 현장직에서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의 고충,
부유한 생활을 한 사람이 느끼지 못했을 가난한 사람들의 절박 삶,
하나부터 열까지 인생사는 여러가지 오해와 무지 그리고 자기 중심적인 사고로 묶여서 연결되어있다.

가끔 억울함이나 상처를 받은 사람, 또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로부터 오는 이타적인 이기심에 의해 
이 세상은 너무 살아갈 만하다. 가령 평생토록 모은 돈을 익명으로 기부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용의자 X 이시가미가 그토록 사랑해서 헌신한 여자 야스코는 술집여자이다.
일본에는 호스티스라는 직업이 있는데, 우리나라로 보면 룸살롱의 여자이지만,
일본에서는 약간 그 것보다는 존중되는 듯하다. 꼭 잠자리를 하는 건 아니고, 손님의 인생을 잘 들어주는 술 상대 정도같다.

그렇게 손님과 젊은 시절 멋도 모르고 눈이 맞어버린 야스코.
하지만 어렸을 때 만난 사람이기에 배우자는 실망스러운 일을 한다.
회사를 실직하자, 사람이 본 모습 또는 망가져 버린 것이다. 결국 너무 힘이 들어서 이혼을 했다.

이혼하면 보통 편견이 생기기 마련인데, 소설을 보면 납득이 될 정도다. 그런 것을 가능하게 사고하여 풀어놓은 것이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의 매력이다.

전 남편이 끈질기게 찾은 결과, 몰래 숨어서 자취를 감춰 사는 야스코의 집을 찾아냈고,
그녀가 새로운 마음을 먹고 일을 하는 도시락가게 벤덴데이를 찾아와서 그녀를 협박한다.
또 다시 악몽이 시작된다. 인연은 잘 못 걸리면 끊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이 한편으로 무섭고, 행복한 것이다.

양 날의 검이므로, 인생사에서 인연을 잘 만나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것 같다.

딸과 함께 결국 남편을 죽여버린다.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의 행동을 완벽하게 그린다. 
그래서 살해자 야스코를 동정하고 싶고, 트랜스포머의 로봇 주인공이 악당을 죽였을때 느끼는 통쾌함을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편견은 나의 통쾌함을 무색하게 하는 힘이 있다. 좋아할 때는 언제고, 그녀는 곧 살인자처럼 보일 뿐이었다.


<갈릴레오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 마나부'>

대학시절 달마라 불리우는 천재가 있었다. 그에게 유일하게 관심을 갖아 인사를 먼저 건넨 건 유가와 마나부였다.
그 이후로 만난 것이 너무 반가운 나머지 그는 달마 이시가미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결국 그 것이 사건의 실마리였다.
사건의 실마리를 잡은 것은 사람의 내면 또는 한사람의 차별성에서 비롯 된 것이었다.

그의 친구 구사나기 형사가 알리바이를 묻기위해 이시가미가 일하는 고등학교를 찾아가서 들었던 이시가미의 말에서 그는 살해당한 도미가시 사건의 답을 찾았고, 결국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질 정도로 충격을 받는다.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착각하기 쉬운 맹점을 살짝 찔러주지요. 예를 들면 기하학 문제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사실은 함수 문제라는 식이죠." 이 말을 구사나기로부터 전해들은 유가와가 말한다.
"그렇지만 시각을 조금만 바꾸면, 놀라울 정도로 간단한 문제야. 평범한 사람이 복잡한 은폐공작을 벌이다보면 오히려 그것 때문에 자기 무덥을 파고 말아. 그러나, 천재는 그렇지 않아. 아주 간단명료해.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선택하지 않을 곳에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어버려."

구사나기의 집요한 물음에, 이시가미가 범죄자인 이유를 눈치채게 된 계기를 유가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이런 말을 했어. 내가 너무 젊어 보인다고. 자신과는 달리 머리숱도 많다고, 그러면서 자신의 빠진 머리를 마음에 두는 것 같은 몸짓을 보였지. 그게 나를 놀라게 한 거야. 왜냐하면 이시가미라는 인물은 결코 겉모습에 신경을 쓰지 않으니까. 인간의 가치는 그런 걸로는 측정할 수 없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인생을 선택하지 않는 다는 것이 옛날부터 그의 지론이었으니까. ....중략.... 그는 겉모습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즉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거야." 

"내가 마지막으로 이시가미와 대화를 나눈 것이 이 장소 였어.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지. 이 세상에는 쓸모없는 톱니바퀴는 없고, 그 톱니바퀴의 사용법도 스스로 정하는 것이라고"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유가와는 매력적이다.
그는 친구 쿠사나기형사에게 말한다. 한가지 약속을 해줘. 형사로써 듣지 말고, 친구로써 들어줘.
그러니까. 형사로써 듣는 다면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없는 거야. 라는 의미로 제안을 하며 쿠사나기 형사에게 사건의 전말을 말한다. 유가와에 대해서 눈빛묘사가 많이 되어있다. 그 부분에서 쿠사나기 형사가 거부할 수 없는 장면이 많이 묘사된다. 

유가와가 사건 수사를 위해서 야스코에게 몇 번인가 말을 건냈을 때도 그 런 눈빛이나 에너지를 묘사한다.
그런 느낌이 보다 유가와를 인간적이고, 독톡한 매력적인 인물로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회사로부터 짤려서 가정을 망친 야스코의 전 남편 도미가시의 상황>

인간 쓰레기라는 표현이 그에게 가장 어울린다.

하지만 사회로부터 버림당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가 했던 파렴치한 행동이 동정 받아져서는 안된다.
스무살 무렵 이 세상에는 모두 착한 사람만 있다고 생각했다. 군대를 전역하고 대학을 4년 다니고, 1년간 서울에서 인턴을 하면서 느낀 것은 인간사가 만만하게 아니며, 영화의 악당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이런 인물의 존재는 우리 사회의 존재와 멀리 떨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사회에서 버려진 사람이 원한을 품고, 
잃을게 하나 없어서 길거리에서 묻지마 살해를 한 범죄자는 죽음을 각오 한 것이지만,

맥락으로보면 이 전 남편 도미가시 또한 사회에서 버려져서 이런 행동을 한 것이다.
힘든 일은 하기 싫고, 등쳐먹을 사람은 있고.


<살인자를 사랑하고 배려한 쿠도>

용의자 X가 질투한 남자 쿠도. 

사실 그 또한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충분히 고백할 상황인 싱글임에도 야스코를 배려하기 위해서 그 사실을 말하지 않고, 그저 외도 정도로 여기게 했다. 

소설 전반적으로 그보다 야스코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남자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를 능가하는 사랑을 다른 방법을 표현한 것이 이시가미 일것이다.  두 사람의 대비되는 사랑법을 보는 것도 핵심이다.

병에 걸린 아내를 잃고, 홀로 살아가는 쓸쓸한 쿠도의 모습도 외로워 보인다.

한 여자를 사랑했고, 배려하기 위해 많은 정성을 쏟았는데.. 그가 살인자라니. 끝까지 믿고 사랑하는 모습에서 더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아마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소설 전반부에서도 쿠도가 나올때 간간히 그것을 철저히 묘사한다.

그래서 많이 동정하고 싶고, 이시가미가 미워지게 한다.


<결국 자살을 결심하게 된 야스코의 딸 미사토>

후반부에 보면 같이 어머니를 괴롭히는 자신의 아버지인 도미가시를 같이 죽인 미사토가 자살을 하다가, 실패해서 병원에 실려갔다는 연락이 온다. 야스코는 충격을 받는다. 그 때 상황이 이시가미의 헌신 내용을 알게 되었때라서 엄청난 정신적인 충격이 있었을 때였다. 

자살을 왜 했을까?

아무래도 구도라는 사람에게 마음을 주고 있는 어머지가 싫어서였을 것이고,
어머니를 위해 살해를 숨겨주기 위해 노력한 옆집 아저씨 이시가미에게 배신하는게 싫어서였을 것이다.

자살을 왜 했을까. 그것은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도 있을 것이고, 어머니를 구도에게 빼았겼다는 상실감.. 즉 식사를 몰래 하다가 미사토에게 걸렸던 적이 있는 야스코의 조심함을 봐도 알 수 있다. 
너무 외롭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철저한 외로움의 또 하나의 존재. 노숙자> (스포일러有)

이시가미가 산책하는 걸로 소설이 시작한다.

시계가 없으면 불규칙할 것 같은 사람이, 시계에서 벗어나는 순간 시계보다 철저하게 규칙적으로 살아간다. 라는 뉘앙스로 이시가미는 생각한다.

책을 읽는 기간 중에 어떤 사람이 '용의자 X 처럼 시체바꿔치기인가.' 라는 글을 보고 김이 빠졌다.
허무했다. 무척 배고플 때 따뜻한 밥을 먹어보기도 전에 솥의 김을 다 빼버린것이다. 엄청 짜증났다. 
지금 그 사실을 몰랐다면 충격과 감동이 제곱이 었을텐데 너무 큰 쾌락을 놓쳐 아쉬울 뿐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책에서는 간간히 노숙자를 언급한다. 후반부에서 이르러서야 그 간간히 언급한 노숙자의 정체와 상황을 말해준다.

사회로부터 도망친 사람들, 가족도 없는 사람들, 
그들이 없어져도 아무도 모른다.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 마나부는 호적수 천재 수학자 친구인 이시가미의 사건을 분석하다가,
쿠사나기(The king of fighters의 쿠사나기 쿄가 아님) 형사에게 말한 내용이다.

톱니바퀴를 빗대어 말한 이시가미(용의자 X)의 말에서 추리를 한 것이다.

소설 후반부에서 이시가미(용의자 X)가 살해당한 야스코의 전남편 도미가시의 시체용으로 쓰인 노숙자의 정체를 밝힌다.

사회에서 낙오한 전 건설관계 일을 한 그는 이시가미에게 아르바이트를 의뢰받는다.
사실 그는 노숙촌에 온지 한달도 안되었고, 자존심이 상해있었다. 
그가 살아진 것은 노숙촌에서 흔한 일이고, 사회에서는 관심도 없는 일이었다.

'기사는 숨이 끊어질 떄까지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그 이유도 몰랐을 것이다.'

이시가미의 헌신의 용도로 쓰인 전 건설기사 노숙자의 형편과 상황 그리고 여기에는 슬픔같은게 있다.
아무도 자기 자신을 찾아주는 이 없는데, 그 때 자신의 경력을 인정해주는 사람이 나타나서, 하라는데로 했는데 이유없이 죽은 것이다.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사회로부터 낙오대고, 범죄자로부터 어떤 잘못도 없이 , 낙오되어서 죽어도 아무도 모른다는 이유로 범죄의 대상이 된 것이다. 슬플 따름이다.


<결론>

각 자의 입장. 

그리고 각자의 외로움.

시각에서 오는 악당.

동정이 안가는 인물이 하나도 없다. 

야스코가 일하는 벤덴데이 부부에게도 애정이 간다. 야스코를 생각해주는 그 마음에서 야스코는 슬픔을 느꼈기 때문이다. 동정을 느끼고, 슬픔을 느끼고, 자책을 느끼는 포인트를 히가시노 게이고는 아주 잘 보여준다. 그것이 인간사라고 실감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얽히고 얽힌 인간사에 대해서 오는 대비되는 상황을 알 수 있는 힘을 길렀다.
후반부 이시가미의 무너지는 절규에서 난 눈물을 흘렸다. 

정말 온 몸을 던져서 사랑하는 여자 야스코가 자수하러 온 것을 보고,
유가와 마나부와 쿠사나기 형사에게 끝까지 연기를 하던 중, 결국 무너지고 만다.


감명 깊다. 


원작 영화를 볼 것이다. 평점 낮으면 안보려고했는데, 8.5점 이상이라서 보려고한다.
상실의 시대를 읽고서 영화를 봤는데, 내가 느꼈던 소설을 완전 무너뜨려서 더욱 영화보는 것에 조심스러워졌다.

내 상상을 완전히 박살내는게 영화일 수도 있다 ㅠㅠ 감독위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